투표하려면 낯선 사람과 함께?…장애인 비밀투표 보장 헌법소원
투표보조를 가족 아닌 사람이 할 때는 반드시 2명 동반하도록 규정
2020년 헌재 기각 이후 6년 만에 다시 헌법소원
“시각·신체 장애로 인해 기표 행위에 지원이 필요한 유권자로 봐야”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장애인의 비밀투표 보장을 위한 헌법소원 심판청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수막에는 “장애인은 비밀투표를 할 수 없나요? 나의 선택과 결정을 가로막는 위헌적인 투표보조 규정 헌법소원 심판청구 기자회견”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장호경뇌병변장애인 김형호 씨는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투표하지 못했다. 자신이 신뢰하는 활동지원사 한 명의 지원을 받아 투표하겠다고 했지만, 투표소에서는 가족이 아닌 사람의 지원을 받으려면 투표사무원까지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김 씨는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투표 내용을 공개하는 데 동의할 수 없었다. 사전투표일에도, 본투표일에도 투표소를 찾았지만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끝내 한 표를 행사하지 못했다.
장애인 유권자들이 자신이 선택한 사람의 지원을 받아 비밀투표를 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다시 헌법재판소를 찾았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는 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족이 아닌 사람의 지원을 받는 경우 투표보조인 두 명의 동반을 요구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선거권, 평등권,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김 씨를 포함해 세 명의 장애인 유권자가 청구인으로 나섰다.
투표를 포기하거나, 낯선 사람에게 공개하거나…선택 강요하는 법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 후단은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가족은 한 명이어도 가능하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을 지명하면 반드시 두 명을 동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는 장애인 선거인이 활동지원사 한 명과 투표소를 찾으면 투표사무원 한 명이 추가로 기표소에 들어가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청구인들은 이 규정이 장애인에게 투표를 포기하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투표 내용이 공개되는 상황을 감수하도록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을 투표보조인으로 선택할 권리를 제한하고, 비밀투표를 할 권리 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활동지원사는 저의 의사소통과 일상생활에서 몸의 움직임을 지원하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제게는 가장 익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나는 내가 믿고 선택한 사람의 지원을 받아 내가 결정한 후보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비밀리에 투표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김영희 장추련 대표도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으로 나섰다. 박김 대표는 그동안 혼자 투표해 왔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활동지원사의 보조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투표소에서는 투표사무원도 기표소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박김 대표가 이유를 묻자 “부정투표가 의심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박김 대표는 결국 활동지원사, 투표사무원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갔다. 하지만 활동지원사가 투표용지를 펼치는 사이 투표사무원은 자리를 떠났다.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던 사람이 정작 투표 과정에서는 사라진 것이다. 박김 대표는 법적으로 감시해야 한다며 굳이 함께 들어온 투표사무원이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나 황당했다고 전했다.
그는 “장애인을 부정투표 의심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헌법재판소가 명확하게 장애인의 권리를 찾아주는 판결을 내려주길 원한다”라고 말했다.
박김영희 대표와 김형호 씨가 발언을 듣고 있다. 두 사람 앞으로 현수막에 적힌 “장애인은 비밀투표를 할 수 없나요?”라는 글씨가 크게 보인다. 사진 장호경기각 6년 만에 다시 헌법소원…“장애인의 선거권 온전히 보장해야”
장애인의 투표보조 규정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장추련은 2017년에도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재는 2020년 5월 27일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헌재는 중증장애인이 거주시설 관계자나 투표보조인의 영향을 받아 대리투표 등 선거범죄에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상호 견제가 가능한 두 명의 보조인이 동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날 소송 대리인단의 최현정 인권법행동 함께, 정의 변호사는 당시 헌재의 기각 사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 조항은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 즉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했지만 단지 기표 행위에 있어 타인의 보조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에게 적용되는 조항이기 때문”에 대리투표 등 선거범죄에 악용될 위험을 이유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또한 제3자인 투표사무원을 기표소에 동반시키는 것도 헌법이 선언한 비밀선거 원칙을 위반하고, 장애인의 선거권과 자기결정권,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밀선거 원칙의 핵심은 “선거인이 투표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노출된다는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투표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장애인의 선거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해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승헌 장추련 사무국장은 “장추련은 현재 선거관리위원회를 대상으로 투표 보조, 그림 투표 보조 요구 등과 관련한 세 건의 공익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며 “여전히 자기결정권과 선택권,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고 있는 장애인의 현실을 헌법재판소가 의미 있게 받아들여 정당한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30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