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법원, 시설수용 장애인 ‘자유 박탈’ 기준 완화…장애계 “인권의 퇴보”
“금으로 만든 새장도 결국 새장”
영국 대법원, 2014년 ‘자유박탈’ 판례 뒤집어
유효한 동의 있으면 자유박탈 아니라고 새 기준 제시
하지만 시설 떠나려는 장애인 강제 제지는 자유박탈 인정
금색으로 된 새장. 왼쪽 편은 문이 열려 사람이 나오고 있고, 반대쪽은 잠겨 있어 사람이 나오지 못하고 쭈그려 앉아 있다. 이미지 제작 ChatGPT
영국 대법원이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장애인들이 장애인 거주시설이나 정신병원 등에 강제 수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자유박탈’의 법적 판단 기준이 축소돼, 영국 장애계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14년 영국 대법원은 “금으로 만든 새장도 결국 새장”이라며,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이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를 받거나 자유롭게 시설을 떠날 수 없다면 자유가 박탈된 상태라고 판단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자유박탈 보호조치(Deprivation of Liberty Safeguards, DoLS)’를 도입했다.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치매 노인 등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이 거주시설이나 병원 등에 수용되거나, 시설이 출입문 폐쇄・구속복 착용・약물투여 등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할 때 정부의 사전 심사와 승인을 거쳐야 하고, 매년 평가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지난 6월 2일, 영국 대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고 장애인의 자유가 박탈되는 상황을 판단할 시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이 상당 기간 수용시설에 감금되어 있는 것은 자유가 박탈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당사자의 유효한 동의가 있을 시 자유가 박탈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사자의 유효한 동의란, 의사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이 시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거주환경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대법원은 당사자가 명확한 반대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시설수용에 대한 암묵적 동의로 볼 수 없으며, 당사자가 시설을 벗어나려고 시도하거나 시설에 불만을 표시할 때 강제로 약물이나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자유박탈이라고 명시했다.
특히 정부가 당사자의 거주 장소를 결정한 경우, 자유박탈이 확인되면 국가에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북아일랜드 법무부장관이 2025년 제기해 진행됐으며, 영국 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인력과 예산 부족에 따라 심사가 지연되고 있어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영국 장애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발달장애인 단체 맨캡(Mencap), 정신장애인 단체 마인드(Mind), 국립자폐협회(National Autistic Society)는 판결이 있었던 2일 공동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은 우리의 인권을 수십 년 전으로 퇴보시켰으며, 역사가 우리에게 필수적이라고 증명해 준 안전장치들을 통째로 앗아갔다”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안전장치를 제거하는 것은 굳게 닫힌 (수용시설) 문 뒤에서 일어나는 학대와 방임이 은폐되도록 방조하는 결과를 나을 뿐”이라며 “우리는 그동안 폐쇄적인 문화, 독립적인 외부감시의 부재, 억압적인 돌봄이 어떻게 학대로 이어지는지 똑똑히 보아왔다. 그럼에도 이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은 우리가 과거의 교훈을 통해 배워온 모든 가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영국의 대형 일간지인 가디언(Guardian) 역시 “법적 보호 장치 제거는 위험을 초래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하고, “장애인단체들이 시설에 대한 감독을 완화하려는 대법원의 결정에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영국 보건사회복지부는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22년 탈시설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시설수용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관행이며 협약 위반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법적 행위능력의 실질적 거부, 장애를 이유로 한 구금 및 자유박탈, 향정신성약물 투여 등 강제적 의료개입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