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가 처음 제기한 시각장애인 접근권 재판헌법소원, 헌재 ‘각하’
시각장애인 963명, 온라인 쇼핑몰 상대로 접근권 소송 제기
1심 손해배상 인정했지만 2심·3심에서 패소
헌법재판소 “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 기본권 침해 아냐”
헌법재판소 전경. 사진 제공 헌법재판소
시각장애인들이 온라인 쇼핑몰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차별구제소송이 헌법재판소까지 갔지만 끝내 각하되면서 장애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시각장애인 963명은 온라인 쇼핑몰 G마켓, SSG닷컴, 롯데쇼핑을 상대로 이들이 시각장애인의 웹 접근성을 침해하고 있다며 차별구제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온라인 쇼핑몰들은 주로 이미지 형태로 상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시각장애인들은 스크린리더(화면낭독기)를 사용해도 제대로 상품 정보를 파악할 수 없어 사실상 온라인 쇼핑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심은 온라인 쇼핑몰들의 차별을 인정하고, 원고들에게 1인당 10만원의 손해배상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과 대법원은 차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아 손해배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원고들은 법원이 충분한 주장·입증기회를 보장하지 않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지난 4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소송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재판헌법소원은 3심까지 마친 법원의 확정판결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반하거나,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 제기가 가능하다.
헌법재판소 “재판 결과에 불복한 것”
장애인법연구회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원고들은 항소심 심리 과정에서 소명 기회가 부족했고, 대법원 역시 상고를 기각하면서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자의 고의성에 대한 장애인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도록 하고 있는데, 항소심을 맡은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이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원고들이 제기한 청구 취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개별적·구체적 사건에서 법원의 사실인정 또는 증거의 평가, 법률의 포섭·적용의 당부를 다투는 것이거나 재판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복”이라며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 법원의 재판으로 인하여 침해되었음이 소명되지 아니하였으므로 헌법재판소법이 정한 청구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청구를 각하했다.
즉, 헌법재판소는 원고들이 제기한 문제가 기본권 침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원고가 법원의 판결에 납득하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장애계 “형식 논리로 헌법재판소가 장애인권리 외면”
이에 장애인법연구회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 결정은 장애인차별 사건에서 문제된 헌법적 쟁점을 외면한 채, 재판헌법소원의 문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한 소극적 결론”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대법원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지 않은 헌법재판소를 강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소송이 9년 가까이 지나도록 온라인 쇼핑몰들이 웹 접근성을 제대로 개선하지 않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장애인차별을 인정하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판결이 반복되면 그 차별은 과연 누구에 의해, 어떻게 시정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시각장애인의 웹 접근권 소송과 관련한 재판헌법소원이 각하된 가운데,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제기한 시외고속버스 이동권 재판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