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예산 없는 26년 예산 통과 안 된다"…전장연, 국회 향해 지하철 시위

오전 8시, 5호선 광화문역에 전장연 회원 100여명이 지하철 시위를 위해 모여있다. 사진 이재민
18일 오전 8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회원 100여 명이 5호선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였다. 같은 시각 4호선 길음역에서도 전장연 활동가 20여 명이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 지하철을 타고 국회의사당역까지 이동하면서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켰다.
이들은 지난 17일 시작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아래 예결특위)의 예산심사소위원회(아래 예산소위)가 2026년 정부 예산안에 특별교통수단,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에 대한 지원 예산을 반영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 이미지 속 내용은 본문 참조. 자료 비마이너
국회는 매년 9월 정부로부터 차기년도 예산안을 송부 받는다. 국회는 상임위별로 각 부처의 예산안을 심사한 뒤, 국회 예결특위 예산소위가 이를 종합해 재정당국과 협의하며 부처 및 사업별 증액과 감액을 결정한다. 예산소위가 수정한 예산안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예산이 최종 확정된다.
전장연 예산 요구에 서울교통공사는 또다시 무정차
전장연 회원들 100여 명은 예산소위가 열리는 국회로 향하기 위해 8시 20분경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했다. 그러자 서울교통공사는 열차 내 승객이 적었음에도 전장연과 회원들의 탑승을 저지했다.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휠체어 이용자의 승차를 막는 과정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휠체어에서 낙상하고 휠체어가 파손되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에게 지하철 탑승이 가로막힌 장애인 활동가들. 사진 이재민

한 쪽 손잡이가 기울어진 수동휠체어와 휠체어에서 떨어진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사진 이재민
또한 장애인 활동가 1명은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휠체어 이용자와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활동가를 강제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경비대장과 부딪혀 현장에서 연행됐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지하철 탑승을 재차 요구했음에도 서울교통공사는 휠체어 이용자들의 진입을 막으며 8시 30분경 열차를 출발시켰다.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특정 장애인단체의 불법 지연 시위로 인해 광화문역을 무정차하고 있다”라며 9시 2분까지 32분간 서대문 방면의 열차를 무정차 시켰다.
이에 전장연 활동가들이 반대 방면으로 탑승을 시도하자 종로 방면 열차 역시 8시 50분경부터 9시 2분까지 12분간 광화문역을 정차하지 않고 통과했다.
한편 4호선 길음역에 모인 활동가들은 오전 8시 3분부터 23분까지 약 20분간, 이후 동대문역으로 이동해 8시 43분부터 9시 37분까지 54분간 4호선 지하철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신경수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무정차하는 지하철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이재민

신지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가 시위 참가자들과 함께 시민 호소문을 외치고 있다. 사진 이재민
장애인 권리 시위, 기획재정부는 반응할까
전장연에 따르면 부처별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 상임위에서는 전장연이 요구하는 예산이 대폭 반영된 상태다. 보건복지위원회는 장애인 복지형 일자리의 근로시간 확대,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확대, 활동지원시간 24시간 지원을 골자로 하는 장애인 예산 3조 5039억 원의 증액이 필요하다고 예결특위에 심사결과를 송부했다.
국토교통위원회 역시 특별교통수단의 운전원 인건비 편성을 골자로 한 260억 원, 교육위원회도 장애인 평생학습 지원을 위한 ‘장애인평생학습도시’ 사업 예산 20억 원에 대해 증액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각 상임위는 예산안 심사의견을 전달할 뿐, 재정당국과 예산 수정에 대한 구체적 조율을 하는 것은 국회 예결특위 예산소위이다. 또한 국회는 기획재정부의 동의가 없으면 예산을 증액할 수는 없어서, 전장연의 요구가 받아들여질지 여부는 사실상 기획재정부의 결정에 달렸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정치인마다 장애인 예산을 보장한다고 말은 하지만 기재부는 돈 없다는 핑계로 칼질하기에 바빴다”라며 “대통령보다 더 높은 권력은 갖고 있다는 기재부가 상임위에서 올라간 예산 반드시 책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장연은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의 확답을 받기 위해 지난 10월 정부 세종청사 앞과 서울역 역사에서 3차례 농성을 진행했고, 지난 10월 28일에는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AI 대전환 워크숍’을 찾아가 구윤철 장관에게 직접 요구안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윤종오 진보당 의원의 질의에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기로 했다”고 밝히며 만남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획재정부의 입장 변화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회 앞에 모인 장애인과 시민들, “장애인 권리 보장해야”
이날 지하철 시위는 전장연이 장애인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마련한 국회의사당역 역사 내 농성장으로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모이며 마무리됐다.
유승권 전북장애인이동권연대 지부장은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산이 많이 들기 때문에 우리를 시설에서 나오지 못하게끔 하고 있는 것이 정부의 문제”라며 “우리도 사람이고, 우리도 같은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강조했다.
김대현 경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도 “정부는 대기업 지원에는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장애인에게는 ‘기다려라’라는 늘 같은 말이 반복된다”며 “예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산을 배정할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정부와 국회를 비판했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만들어 온 피켓. "멈추지 않는 용기, 끝까지 함께 합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모두의 권리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 이재민
시위에 참여한 이현정 인천대학교 시사사진 동아리 찰칵 회장은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잠시 (지하철을) 멈춰 세운 이유는 (우리 사회가) 너무 오래 멈춰 있었기 때문”이라며 “정부나 지자체는 책임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이동권, 탈시설, 평생교육, 노동권 등 장애인의 기본권을 국가 정책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장연은 국회 예산소위와 기재부 장관의 장애인 예산 증액에 대한 약속이 없다면 세계장애인의 날인 오는 12월 3일에 ‘제67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다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8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