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정의 대상에서 마침내 ‘권리의 주체’로… 장애인권리보장법 발의
장애인, 복지의 수혜자 아니라 시민이자 권리의 주체
장애인등록제 폐지하고 장애의 사회적 개념 담겨
장애계 10년 투쟁의 성과… 권리보장법, 연내 제정 위해 힘 모은다
장애계의 오랜 염원이었던 장애인권리보장법(아래 권리보장법) 제정안이 27일, 드디어 발의됐다. 1981년,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된 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보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권리보장법을 대표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제정연대(아래 양대법안제정연대) 주최로 서울시 영등포구 양대 법안 제정 농성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마지막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는데, 권리보장법이 오롯이 제정될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 이후 40년… 장애인 권리 강조하는 ‘권리보장법’
장애인 복지제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심신장애자복지법’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부독재 시절인 1981년에 제정됐다. 당시 심신장애자복지법은 ‘장애 발생의 예방과 재활 및 보호’를 위해 제정되었으나, 사실상 장애인수용시설 예산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1988년 제8회 장애자올림픽이 개최되자, 장애계는 장애인 소득보장정책이나 사회안정망이 없는 상태에서 장애자올림픽에 예산을 쏟아붓는 정부를 규탄하며,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과 함께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장애인복지법으로 전면 개정하라는 이른바 ‘양대법안투쟁’을 전개한다. 그렇게 1989년 장애계의 투쟁으로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었다.
법 개정을 통해 복지지원에 관한 추상적 규정은 의무 규정으로 바뀌었지만 시혜와 동정의 잔재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장애인복지법으로 전면개정되면서 도입된 장애인 등록제와 장애등급제는 여전히 장애를 의학적 손상의 관점으로만 판단했다. 게다가 장애로 받을 수 있는 지원 대부분은 ‘공공요금 감면’이라는 시혜적 혜택뿐이었다.
장애계의 투쟁으로 2007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2010년 장애인연금이라는 개인별 서비스가 마침내 도입되면서 장애등급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예산에 맞춰 정부가 자의적으로 장애등급을 하락시켜버리는 수단으로 장애등급제를 활용한 것이다.
권리보장법 제정의 필요성은 2012년,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대두됐다. 장애인을 의학적 기준으로 나눈 후 등급에 따라 획일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세우는 법이 새로 필요해졌다. 20대 국회에서 권리보장법 제정안 3건이 발의됐지만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후보 시절 권리보장법 제정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100대 국정과제에 이를 포함해 놓고 임기가 다 끝나가는 지난 8월에서야 법 제정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그간 장애계는 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해 끈질기게 투쟁해 왔다. 장애인 복지제도에 관한 법이 처음 생긴 지 40년 만에, 권리보장법 제정투쟁을 한 지 10년 만에, 장애인을 한 사람의 시민이자 권리의 주체로 보는 권리보장법 제정안이 27일 발의됐다. 이제 법 제정의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 장애인이 더는 무능과 나약함을 증명하지 않도록
권리보장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법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했다. 먼저 장애를 의학적 정의가 아닌 사회적 정의로 재규정했다. 의학적 정의에 따른 장애인등록제를 폐지하고 ‘장애서비스 이용자’라는 규정을 통해 장애서비스 및 권리옹호가 필요한 모든 사람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강조하는 원칙을 권리보장법의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한국이 이 협약 당사국인 만큼, 장애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에게 개별화된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책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권리옹호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장애인위원회, 장애인권리옹호센터 등도 설치하도록 했다. 인권침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단체소송 절차도 마련돼 있다. 권리보장법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예산도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 그래서 장애인지예산, 장애인권리보장특별기금 등을 도입해 장애인 권리와 복지증진에 필요한 재원의 근거를 명확히 했다.
장혜영 의원은 “40년 장애인복지법 역사 속에서, 국가는 장애인의 삶과 꿈이 아니라 무능에 돈을 줬다. 장애인은 무능, 어려움, 나약함을 증명해야 겨우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서비스만을 받아왔다”며 “시혜와 동정 속에 더는 갇히지 않고 존엄한 삶을 누리겠다는 선언이 오늘(27일) 제가 대표발의한 권리보장법”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또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일을 이제는 하루도 미룰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권리보장법 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야를 넘어 모든 의원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탈시설지원법은 작년 12월에, 권리보장법은 오늘(27일) 발의됐다. 196일(27일 기준)간 국회를 향해 이곳 농성장에서 양대 법안 제정을 외쳐왔지만 이제 시작이다. 두 법안 모두 올해 안에 제정되도록 끝까지 투쟁해서 꼭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박환수 정의당 장애인위원회 위원장은 “장애인복지법, 의료적 모델만을 상징하는 장애인등록제는 이제 그 소명을 다했다. ‘81년 체제’에서 ‘2021년 체제’로 변화시켜 줄 권리보장법 발의를 환영한다.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장애인 복지제도가 권리보장법으로 인해 획기적으로 바뀌도록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19)